2008년 05월 16일
한화이글스 1차지명-中
94년 이후 99년까지 그야말로 잔혹사에 가까운 1차지명을 자랑했던 한화이글스의 1차지명.
00년 지명부터는 고졸우선지명이 폐지되며 삼성과 고졸우선지명 폐지 운동의 쌍두마차였던
한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규수와 마일영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반면 경북팜에서는 부상
으로 주춤했지만 고3선수중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배영수와스피드는 140정도였지만 좋은
하드웨어와 수준급의 슬라이더, 경기운영능력, 컨트롤을 보유한 장준관, 그리고 이범호, 박
기혁의 두 걸출한 야수가 나타나버려따!!!
00년 조규수
마일영과 경합을 벌였던 조규수는 세청에서 복귀한 뒤 팀을 봉황대기 우승으로 이끌며 상
대적으로 약체인 대전고에 속해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마일영을 제치고 1차지명이 낙
점되었다. 조규수가 투수로서는 괜찮은 하드웨어와 최고 143정도의 빠른 공을 보유했던
반면 마일영은 각이 큰 커브와 140을 약간 웃도는 속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스카우터
였던 정영기 현 2군감독께서는 "조규수가 차라리 미국으로 가버렸으면."이라고 하셨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두 투수는 난형난제였다.
조규수는 팔꿈치 뼈가 웃자라는 단점이 있었고 마일영은 하드웨어가 좋다고 보기 힘든(고
3당시 176정도?). 어쨌거나 한화의 1차지명은 조규수가 낙점되었고 한화는 마일영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현대의 트레이드 제시액이 더 크자 바로 철수했다.(이후 신인은
지명 후 1년간 트레이드 불가 조항이 생겼던 것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루키시절 시즌 초반 고교수준을 넘어선 슬라이더를 앞세워 연승행진을 내달렸으나 그의
속구는 한없이 가벼웠다. 제대로 걸렸다 하면 곧바로 장타로 연결되었으니. 첫해 방어율
은 5점대였으나 10승에는 성공한 조규수는 이듬해 시즌 첫 선발등판을 완봉으로 연결하
면서 한화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시즌이 접어들수록 조규수는 점점 하
락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4,5회 집중타를 맞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한화 벤치는 때마침
열악했던 뒷문으로 보냈다. 조규수는 마무리 전업 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곧 털리
기 시작했다. 2년차 시절 방어율은 4점대 초반이었으나 피안타율은 3할에 육박했을 정도.
01년 이후 조규수는 매우 좋지 못한 자기관리로 인해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고 때마침 시
한폭탄을 안고 있던 팔꿈치가 문제를 일으키며(뼛조각 문제) 투구폼을 변경하기도 했지
만 백약이 무효했고 04년 병풍에 휘말려 05년 시즌 후 공익으로 입대했다. 조규수의 자기
관리는 공익근무 기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꾸준했다. 지난해 연말 복귀했으나 기대가
가지는 않는다.
01년 김태균
연고지에 쓸만한 투수가 없던 것이 한화로서는 행운이었다고 할까. 김태균은 고교시절
발군의 타격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1루수라는 포지션의 한계와 좋지 않은 시력, 느
린발 등으로 인해 투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추신수-이대호, 공수를 갖춘 정상호, 김동
건 등에 비해 낫다고 보기는 힘든 평가를 받았다. 어쨌거나 연고지역에 별다른 자원이
없는 관계로 1차지명.
김태균은 루키시절 약 2달 정도 2군에서 담금질을 한 뒤 장종훈의 부상 이후 본격적인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두번째 타석에서 첫안타와 첫타점을 만들어냈다. 이후 계속적으
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강석천이 수비에서 노쇠화 조짐을 보이던 3루수로 기용되며
루키시즌 규정타석에 한참 못미치면서도 20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괴력을 선보인다.
2년차 시절 복합적인 요인(상대구단의 집중분석, 포지션, 본인의 자만심에 의한 준비부
족 등등)으로 대부진했던 김태균은 3년차 시절 1루수-4번타자로 포지션이 고정되며 이
후 쭉 팀의 4번타자 자리를 지켜왔다. 06시즌과 07시즌 방맹이 무게 문제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08년은 잔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출장을 못하면서도 현재 12홈런으로 클
락과 공동 1위. 이 페이스가 시즌 끝까지 이어질지는 심히 의문이기는 하지만...
팀개명 후 처음으로 기대치 이상을 충족시킨 1차지명이었다.
02년 신주영
01년 새로 부임한 김정무 부장은 00년까지 한화의 투수코치였다. 당초 유력했던(?) 조
동찬 대신 그해 고교야구 넘버원을 다투는 옆구리 투수 신주영을 낙점했다. 팀의 센터
라인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신주영은 그렇다치고 2차 1번에서 지명할
기회를 날린 것은 정말 아쉬운 대목.
신주영은 고교시절 최고 136km를 던지며 유연성이 뛰어나 장래성이 밝다는 평을 들은
투수였다. 그러나 데뷔 초 노는 데 더 관심이 많아 게으른 천재소리를 들으면서 2군서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희민 인스트럭터로부터 혹평을 받은 것에 자극을 받
았는지 이후 각성.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니...
05년 140을 넘나드는 구속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오봉옥 덕분인지 많은 기회
를 잡기는 힘들었고 8월부터 윤근영과 함께 정병희와 윤규진이 떨어져나간 불펜진을
이끌었다. 다음해 구속이 갑작스럽게 저하되었지만 시즌 초반 최영필과 함께 불펜의
쌍두마차로 활약했지만 5월초 롯데전에 80개 가량을 던진 뒤 하루쉬고 다시 등판, 막
장수비 속에 장렬히 산화했다. 06년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입단했지만 작년 중반 이후
별다른 출장이 없는 걸로 봐서 부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00년 지명부터는 고졸우선지명이 폐지되며 삼성과 고졸우선지명 폐지 운동의 쌍두마차였던
한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규수와 마일영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반면 경북팜에서는 부상
으로 주춤했지만 고3선수중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배영수와스피드는 140정도였지만 좋은
하드웨어와 수준급의 슬라이더, 경기운영능력, 컨트롤을 보유한 장준관, 그리고 이범호, 박
기혁의 두 걸출한 야수가 나타나버려따!!!
00년 조규수
마일영과 경합을 벌였던 조규수는 세청에서 복귀한 뒤 팀을 봉황대기 우승으로 이끌며 상
대적으로 약체인 대전고에 속해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마일영을 제치고 1차지명이 낙
점되었다. 조규수가 투수로서는 괜찮은 하드웨어와 최고 143정도의 빠른 공을 보유했던
반면 마일영은 각이 큰 커브와 140을 약간 웃도는 속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스카우터
였던 정영기 현 2군감독께서는 "조규수가 차라리 미국으로 가버렸으면."이라고 하셨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두 투수는 난형난제였다.
조규수는 팔꿈치 뼈가 웃자라는 단점이 있었고 마일영은 하드웨어가 좋다고 보기 힘든(고
3당시 176정도?). 어쨌거나 한화의 1차지명은 조규수가 낙점되었고 한화는 마일영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현대의 트레이드 제시액이 더 크자 바로 철수했다.(이후 신인은
지명 후 1년간 트레이드 불가 조항이 생겼던 것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루키시절 시즌 초반 고교수준을 넘어선 슬라이더를 앞세워 연승행진을 내달렸으나 그의
속구는 한없이 가벼웠다. 제대로 걸렸다 하면 곧바로 장타로 연결되었으니. 첫해 방어율
은 5점대였으나 10승에는 성공한 조규수는 이듬해 시즌 첫 선발등판을 완봉으로 연결하
면서 한화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시즌이 접어들수록 조규수는 점점 하
락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4,5회 집중타를 맞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한화 벤치는 때마침
열악했던 뒷문으로 보냈다. 조규수는 마무리 전업 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곧 털리
기 시작했다. 2년차 시절 방어율은 4점대 초반이었으나 피안타율은 3할에 육박했을 정도.
01년 이후 조규수는 매우 좋지 못한 자기관리로 인해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고 때마침 시
한폭탄을 안고 있던 팔꿈치가 문제를 일으키며(뼛조각 문제) 투구폼을 변경하기도 했지
만 백약이 무효했고 04년 병풍에 휘말려 05년 시즌 후 공익으로 입대했다. 조규수의 자기
관리는 공익근무 기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꾸준했다. 지난해 연말 복귀했으나 기대가
가지는 않는다.
01년 김태균
연고지에 쓸만한 투수가 없던 것이 한화로서는 행운이었다고 할까. 김태균은 고교시절
발군의 타격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1루수라는 포지션의 한계와 좋지 않은 시력, 느
린발 등으로 인해 투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추신수-이대호, 공수를 갖춘 정상호, 김동
건 등에 비해 낫다고 보기는 힘든 평가를 받았다. 어쨌거나 연고지역에 별다른 자원이
없는 관계로 1차지명.
김태균은 루키시절 약 2달 정도 2군에서 담금질을 한 뒤 장종훈의 부상 이후 본격적인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두번째 타석에서 첫안타와 첫타점을 만들어냈다. 이후 계속적으
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강석천이 수비에서 노쇠화 조짐을 보이던 3루수로 기용되며
루키시즌 규정타석에 한참 못미치면서도 20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괴력을 선보인다.
2년차 시절 복합적인 요인(상대구단의 집중분석, 포지션, 본인의 자만심에 의한 준비부
족 등등)으로 대부진했던 김태균은 3년차 시절 1루수-4번타자로 포지션이 고정되며 이
후 쭉 팀의 4번타자 자리를 지켜왔다. 06시즌과 07시즌 방맹이 무게 문제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08년은 잔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출장을 못하면서도 현재 12홈런으로 클
락과 공동 1위. 이 페이스가 시즌 끝까지 이어질지는 심히 의문이기는 하지만...
팀개명 후 처음으로 기대치 이상을 충족시킨 1차지명이었다.
02년 신주영
01년 새로 부임한 김정무 부장은 00년까지 한화의 투수코치였다. 당초 유력했던(?) 조
동찬 대신 그해 고교야구 넘버원을 다투는 옆구리 투수 신주영을 낙점했다. 팀의 센터
라인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신주영은 그렇다치고 2차 1번에서 지명할
기회를 날린 것은 정말 아쉬운 대목.
신주영은 고교시절 최고 136km를 던지며 유연성이 뛰어나 장래성이 밝다는 평을 들은
투수였다. 그러나 데뷔 초 노는 데 더 관심이 많아 게으른 천재소리를 들으면서 2군서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희민 인스트럭터로부터 혹평을 받은 것에 자극을 받
았는지 이후 각성.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니...
05년 140을 넘나드는 구속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오봉옥 덕분인지 많은 기회
를 잡기는 힘들었고 8월부터 윤근영과 함께 정병희와 윤규진이 떨어져나간 불펜진을
이끌었다. 다음해 구속이 갑작스럽게 저하되었지만 시즌 초반 최영필과 함께 불펜의
쌍두마차로 활약했지만 5월초 롯데전에 80개 가량을 던진 뒤 하루쉬고 다시 등판, 막
장수비 속에 장렬히 산화했다. 06년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입단했지만 작년 중반 이후
별다른 출장이 없는 걸로 봐서 부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 by | 2008/05/16 22:02 | 염좡이글스 | 트랙백




